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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통치를 하는 시진핑의 속내 #1 World




[집권배경]

시진핑(습근평)은 원래 대권을 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2012년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 그리고 2019년 지금 시진핑은 중국을 철권통치하면서,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All Problems)의 핵심에 서 있다. 

중국 공산당 3대 파벌(태자당, 공청단, 상해방) 중 태자당에 속한 시진핑은 태자당 내에서도 비주류였다. 시진핑은 잘 해봐야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7~8등의 말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 시진핑이 왜 지금 철권통치를 할 수 있을까?

2012년 이전의 중국 공산당 파벌 전쟁에서는 누가 봐도 상해방(장쩌민(강택민))이 실권자였고 그 다음에 공청단(후진타오(호금도)), 태자당 순이었다. 장쩌민은 덩샤오핑(등소평)의 안배에 따라 후진타오한테 주석직을 넘겨주긴 했지만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2007년까지 가지고 있는 방법으로 후진타오의 실권을 박탈하고, 2012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최상석에 "아무런 직함도 없는" 장쩌민이 국가주석 후진타오를 제치고 앉아있는 등 실권을 과시했다. 특히 중국 공안부장(경찰청장)에 장쩌민의 최측근 저우융캉을 깔아놓고 정법위 서기(정치법무위원장)를 겸임시키면서 후진타오의 공권력을 완벽하게 제거했다. 그러나 2019년, 장쩌민은 완벽하게 사라져버렸다. 항간에는 장쩌민이 죽었다는 설까지 돌았다.

장쩌민은 후진타오한테 주석직을 넘겨주긴 했지만 당연히 본의일 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다음에는 무조건 정권을 찾아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량위(당시 상하이 시장(상하이 서기))를 밀었다. 후진타오는 천량위를 미는 장쩌민에 대항해서 리커창(이극강)을 밀었다. 그러나 당연히 실권자는 장쩌민이었고, 천량위가 차기 주석이 될 게 확실해보였다. 그런데 2006년 9월, 천량위가 부패 스캔들로 인해 낙마한다. 사실 천량위의 부패라고 해봐야 중국 지도부가 다같이 하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후진타오는 천량위의 부패 스캔들을 잡자 장쩌민한테 대응할 명분을 쥐었다고 생각했고, 이 정보를 "주중 미국대사관"을 통해 국제사회로 전파시켜서 천량위가 '(중국 입장에서) 늘 있는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낙마시키는데 성공한다. 장쩌민은 후계자를 상실해버렸다.

cf)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파나마 페이퍼스"를 통해 폭로된 바에 따르면, 비자금을 조성하여 해외 조세피난처에 입금하는데 그 돈이 한국 돈으로 4,400조 원(4조 달러) 어치이다. 시진핑 본인 역시 호주 국적을 가진 사촌동생과, 마카오에 거주중인 매형을 통해 대거 비자금을 조성했는데 그 돈이 700억 달러(한화 80조 원)에 달한다. 

장쩌민의 상해방은 천량위를 제외하면 "죄다 늙어 죽는"(...) 60세 이상들이 깔려 있었다. 마음이 급한 장쩌민은 마침 충칭시장(충칭 서기)으로 낙향한 보시라이(박희래. 태자당 주류)한테 주목한다. 보시라이는 "마오이즘의 부활"을 천명하며 부패와의 전쟁(?!)을 벌였다. 보시라이의 지도 아래 충칭시 내의 삼합회는 싹 쓸려나갔고 이 사실이 CCTV(중국중앙텔레비전)를 통해 보도되며 전국적인 인기를 얻는다. 장쩌민은 자기 수하를 시켜서 보시라이를 접견케 하고 태자당 쪽과 상해방이 합심하여 정권을 되찾자고 했다. 그래서 강택민과 박희래 간 동맹관계가 형성되었다. 안 그래도 상해방한테 밀리는 공청단 입장에서 3대 파벌인 태자당까지 상해방한테 붙어버리면 누가 봐도 보시라이가 주석직을 먹고 장쩌민은 정권을 연장할 태세였다.

그러나 2011년, 후진타오한테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온다. 보시라이의 와이프(구카이라이)가 부패를 저지르고, 이를 폭로하려던 보시라이의 측근인 외국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터진것이다. 보시라이는 이 사건을 덮으려 했고, 사실 제대로 덮일 뻔 했다. 2012년 3월 보시라이가 구카이라이 사건을 덮는 데 역할을 했던 왕리쥔(충칭시 공안부장)과 갈등이 생겨서 왕리쥔을 충칭 문화부시장으로 좌천시켰다. 그러자 왕리쥔은 이에 불만을 품고 충칭이 아닌 사천성 성도(청두)시 미국 영사관으로 도주한다. 그리고 미국 영사관에 들어간 왕리쥔은 보시라이가 반부패 활동이라고 한 행동의 진상을 모조리 폭로해버렸다. 

후진타오는 왕리쥔 사건을 명분으로 원자바오(온가보) 총리를 통해 "(보시라이는) 제2의 문화대혁명을 일으키려 하는 것인가?"라는 말을 통해 보시라이를 실각시키는 데 성공한다. 당시 차기 주석직은 2012년 4월 선출할 예정이었는데, 왕리쥔 사건은 2012년 3월에 터졌고 결국 장쩌민은 후계자를 모두 잃었다. 장쩌민은 1달도 안 남은 기간동안 차기 주석직을 찾아야 했다. 안 그러면 리커창이 정말 주석직이 되고 상해방은 날라갈테니까.

마음이 급해진 장쩌민 눈에 태자당의 비주류인 시진핑이 들어왔다. 시진핑은 상해방은 아니지만, 시진핑을 내세우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태자당과의 연대를 유지하여 후진타오의 반대를 누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개최된 2012년 4월 전인대, 정말로 차기 주석직 경선에서 시진핑이 리커창을 꺾고 주석에 선출되었다. 리커창은 총리에 뽑혔다. 원래 중국 주석직은 추대 형식으로 돌아갔는데 처음으로 당내에서 "경선"이 발생했고, 이 경선에서 상해방과 태자당의 표를 받은 시진핑을 주석직에 앉히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후진타오도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시진핑이 주석직에 당선되자 중앙군사위 주석과 중국 공산당 총서기 직위를 시진핑한테 동시에 넘겨서 실권을 안겨준 것이다. "난 시진핑을 인정할테니 공청단을 잘 봐달라"는 표현이었다.

이런 집권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 시진핑은 급하게 집권했다. 당연히 권력기반이 취약했다. 그러나 2019년 현재 시진핑은 "포브스"에서 집계한 "세계의 권력자들"(The World's Most Powerful People)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러시아 푸틴보다도 권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어떻게 이런 철권통치를 하게 됐을까?

덧글

  • 역성혁명 2019/12/21 19:46 #

    착한 중국인은 죽은 중국인이 아닌 자유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중국인이라는 것으로 바뀌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 nolifer 2019/12/21 20:22 #

    그런 중국인은 이미 공산당과 공산당원, 열등한 공산짱개 새끼들이 보이는 족족 모조리 죽여버렸기 때문에 죽은 중국인이라고 하는겁니다
    이제 좀 아시겠습니까? 다음은 당신 차례라는걸 아셨음 좋겠고 이제 입을 다물고 평소처럼 지내시길 바랍니다
    위대한 사회주의 낙원에서 당신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 역성혁명 2019/12/22 18:26 #

    지금 쓴 답글을 보면 청와대와 국회본회장 난입을 시도한 무리들이 생각납니다. 유감입니다.
  • Kael 2019/12/24 00:11 #

    중국이라는 나라가 한 9,876개로 쪼개져서 즈그들끼리 500년간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 바뀔겁니다.
  • 나인테일 2019/12/24 05:09 #

    독재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인 파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파산이란건 망하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정 정도의 고통을 감내하면 새로 출발하는 자격을 주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민주국가에서는 잘못된 정책으로 지지율이 파산한 당은 그냥 야당으로 내려가면 그만이고 한 10년 정도 추운데서 구르다 보면 다시 정권을 잡기도 하고 그러죠. 원칙적으로는 그거 이상으로는 책임질 일이 없습니다.

    근데 독재정권은 지배자의 무오성을 전제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라 이런 식의 사이클이 돌아가는게 되질 않고 망하는게 뻔히 보여도 노빠꾸 전략 밖에는 쓸 수가 없게 되는거죠. 결국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 가서야 정권이 비참하게 끝장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대충 그런 고립무원의 상황이 중국 공산당의 예정된 결말이라고 봅니다. 그게 언제인가 하는 시간문제가 있을 뿐이죠. 등소평 시절부터 후진타오 정권까지는 당 내 계파 대립이 많아 자기들끼리 멱살잡이질 해가면서 비판하고 숙청해가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킬 여력이 공산당에 상당히 많았고 실제로 등소평의 방향 전환은 굉장히 파격이기도 했습니다만 시진핑의 집권은 당내 계파로 유지되는 정치적 다양성이 지속가능한게 아니었다는 증명이 되어버린거죠.
  • Kael 2019/12/24 09:19 #

    그만큼 시진핑의 능력이랄까... 대단하긴 합니다. 나라를 말아먹는 능력이 말이죠.
  • 나인테일 2019/12/22 01:37 #

    개방 직후 무슨 서부 개척시대처럼 무법천지라 문제였던 중국이 이 정도까지 경직된 사회로 퇴화해버리는걸 보면 사회의 변화라는게 퇴행적인 방향으로도 꾸준히 장기간 일어날 수 있다는 증명처럼 보여서 섬뜩하기도 하죠.
  • Kael 2019/12/24 00:12 #

    시진핑 집권한지는 겨우 7년밖에 안 됐습니다. 7년만에 저런 전체주의 나라를 만드는 시진핑의 영도력이 미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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