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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통치를 하는 시진핑의 속내 #2




[제국주의와 홍콩]

2012년 4월, 시진핑이 "실권을 잡은 상태로" 집권을 했다. 시진핑과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단어는 "제국주의", 그리고 "홍콩"이다. 하나는 시진핑의 정책으로, 하나는 시진핑의 발목을 잡는 악연으로.

2012년 4월 집권한 시진핑은 서방세계로 통하는 중국의 출구인 '홍콩'을 통해 자신의 등극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했다. 시진핑의 이 생각이 본인의 발목을 잡는 바보짓이 될 것이라고는 시진핑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진핑과 홍콩의 악연이 시작되는, 바로 <애국시민교육> 사건이라 불리는 일이다. 

애국시민교육이란, 홍콩 교육과정을 개정하여, 중국 공산당의 이념을 담은 교육을 시키려고 한 것이다. 마침 2012년 7월 임기가 만료되는 도널드 창 홍콩 행정장관의 후임으로 렁춘잉이라고 하는 신임 홍콩 행정장관을 시진핑이 앉혔다. 렁춘잉을 통해 애국시민교육이 시행될 거라 시진핑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홍콩에서 월드스타가 탄생하니 그게 바로 <조슈아 웡(황지봉)>이다. 

당시 16살이던 조슈아 웡(1996년생)은 2012년 9월 2학기부터 교육받을 애국시민교육 교과서를 4월 말 학교 교무실에서 선생들 몰래 훔쳐보았다. 이 교과서에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내용이 들어간 것을 발견하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애국시민교육 교과서는 "중국 공산당 체제 선전물"이었다. 

애국시민교육 교과서를 보고 화가 난 조슈아 웡은 같은 학년 친구들과 애국시민교육을 철회시키기 위한 학생단체 '학민사조'(2019년 현재 데모시스토당이라는 정당으로 바뀜)라는 단체를 만든다. 학민사조는 여러 토론회를 개최하고, 지지세를 불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학민사조는 7월, 8월 '여름방학' 44일간 홍콩 교육부 청사 광장을 점거하고 "자유광장"이라 이름붙인 텐트 농성을 진행하였다. 홍콩의 한여름은 습도 100%에 최고 섭씨 50도까지 올라가는 찜통이다. 그러나 학민사조는 씻지도 못하고 옷도 못 빨아서 냄새가 나지만 교육부 청사 앞에서 애국시민교육을 철회시키기 위한 농성을 계속하였다. 조슈아 웡의 투쟁은 홍콩 시민들을 움직였고, 농성을 지지하고 동참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지막 44일차에 홍콩 교육부 광장에는 12만 명에 달하는 홍콩 시민들이 찾아와서 "애국시민교육을 철회하라"는 시위를 했다. 결국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은 2012년 8월 29일, 조슈아 웡한테 굴복하여 애국시민교육을 철회했다.

16살밖에 안 된 소년 조슈아 웡이 2012년 막 집권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을 이긴 것이다! 애국시민교육 사건의 후폭풍은 굉장했다. 16살 홍콩 소년 조슈아 웡은 중국을 이긴 월드스타로 등극했고 시진핑은 강대국의 체면을 구겼다. 강대국 체면을 구긴 정도면 다행이지 중국 내에서는 홍콩 문제로 인해 반 시진핑 움직임까지 발생했다.

홍콩에서 물을 심하게 먹은 시진핑은 너무 열을 받은 나머지 화풀이 성격으로 자신을 밀었던 장쩌민한테 통수를 날린다. 저우융캉의 뇌물수수 건을 핑계로 저우융캉을 2012년 12월 전격 경질한다. 역시나 중국 공산당 수준에서는 있을 수 있는 뇌물 액수였음에도 말이다.(물론 한국이었으면 목이 날아갈 액수였다) 저우융캉이 짤려나가고 장쩌민이 격렬하게 반발하자 시진핑은 이른바 '반부패' 드라이브를 걸었다. 시진핑의 반부패 드라이브는 자신을 밀었던 상해방을 "반당분자"로 몰아서 모조리 쳐내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상해방은 한정(韓正) 1명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시진핑한테 갈려나간다.

장쩌민을 숙청하는 데 성공한 시진핑은 홍콩을 통해 세계로 나간다는 계획이 조슈아 웡에 의해 좌절되자 '직접' 중국의 힘을 해외로 퍼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바로 "일대일로", "대국굴기", 세글자로 "중국몽"이라 불리는 <중국 제국주의> 정책이다. 2013년 시진핑은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한테 "태평양을 반으로 가르자"는 <신형대국관계>를 제의한다. 중국을 G2로 인정해주고 태평양 서부 연안에서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해달라는 것이었다. 신형대국관계를 제의받은 미국은 깜짝 놀랐다. 미국은 중국이 너무 커졌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의 후폭풍과 2011년 유럽 국가들의 부도위기 후폭풍을 겪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사실 뾰족한 카드가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정치권은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한 채 시간을 버리게 됐다.

이 와중에 시진핑은 2004년 후진타오가 호주에서 약속하고도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했던 <시드니 지하철>을 중국 정부와 홍콩 지하철 회사 MTR이 건설비의 90%를 내고 중국산 철도차량을 통해 호주에서 지하철을 운영한다는 아이디어를 호주에 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었던 호주 정부는 시드니 지하철의 운영권을 중국에 넘겨주고 지하철 공사를 시작했다.(그리고 이 시드니 지하철은 2019년 5월 개통하였다!)

시진핑은 호주 지하철을 계기로 세계 각국에 중국의 힘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호주는 미국의 최우선 동맹국(5개의 눈)이라 불리는 1선급 동맹인데 미국-호주 관계에 시진핑이 끼어들어가 균열을 낸 것이다. 시진핑은 호주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국내의 반대파를 하나 둘 꺾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2015년 초, AIIB를 출범시키고 RCEP(ASEAN + 6 자유무역협정) 본협상을 시작하는 등 중국의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1세계에 속한 한국의 대통령 박근혜를 2015년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시키는데 성공했다.

제국주의 정책을 펼치는 데 성공한 시진핑의 문제는 여전히 '홍콩'이었다. 중국 정부는 2017년 치러지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전 홍콩 주민들의 직선제로 시행해주겠다고 2004년 홍콩 시민들한테 선포한 바 있다. 시진핑은 2012년 악연을 쌓은 홍콩 문제를 또다시 맞닥뜨려야 했다. 시진핑은 2004년 당시 홍콩 선거를 직선제로 시행해주겠다고 했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 점을 알아냈다. 그러자 시진핑은 2014년 5월 홍콩에 "행정장관 직선제를 시행하되 홍콩 후보 추천위원회(친중파 다수)와 [중국 전인대의 승인]을 받은 후보만 후보로 등록 가능"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홍콩 시민들은 분노가 폭발했다. 누가 봐도 2017년 행정장관 선거에서는 민주파 인사를 행정장관으로 뽑을 수 있을거라 확신했는데 시진핑이 말한 대로라면 [시진핑A], [시진핑B], [시진핑C], [시진핑D] 중에서 행정장관을 뽑으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콩에서는 반발 시위가 산발적으로 벌어지다가 2014년 9월 28일, 우리가 아는 대대적인 봉기, <우산 혁명>이 시작되었다. 많을 때는 50~60만명, 적을 때는 5만 명 내외의 홍콩 시민들이 홍콩 센트럴을 '매일' 점령하고 "진정한 직선제를 시행하라"며 민주화 투쟁에 나서자 세계의 눈이 또다시 홍콩에 쏠렸다. 시진핑은 홍콩 시위를 강경진압하라고 지시해서 79일만에 진압시키긴 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또다시 홍콩 문제에 '굴복'하고 만다. 

시진핑이 제안한 이른바 '가짜 직선제' 계획이 2015년 홍콩 입법회에서 부결(홍콩 선거제도를 개편하는 안건은 홍콩 입법회에서 2/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함. 당시 홍콩 입법회 의석은 60석이었고 민주파 의원 25명 전원 반대표 행사)되고 시진핑이 2015년 4월 전인대를 통해 "우리는 홍콩 직선제 계획을 철회하고, 기존의 제도(간선제)를 통해 홍콩 행정장관을 뽑을 것"이라고 선언해야 했다. 물론 간선제로 뽑는 건 중국 입장에서는 편하긴 하다. 민주화가 좌절된 홍콩 시민들이 <절대로 가만 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그리고 2019년 초대형 시위가 터진다)

홍콩 우산 혁명을 79일만에 진압하자 시진핑은 당근책으로 중국 기업들이 중국 증시와 홍콩 증시에 동시 상장하고 교차거래가 가능하게 하는 조치를 꺼냈다. 외국 자본이 홍콩을 통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중국 상하이증시는 10년만에 최고치, 홍콩증시는 역대 최고치를 연일 경신했고 중국 경제는 갑자기 급격한 성장을 맞았다. 이를 통해 "시진핑 경제모델"이 우수하다며 경제권을 내주고 있던 리커창 총리(공청단)의 영향력을 박탈한다. 리커창은 2018년 시진핑 3선 개헌(연임제한 철폐 개헌)이 이뤄지자 완전히 실권을 박탈당하고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