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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통치를 하는 시진핑의 속내 #3




-시진핑 독재정권의 시작, 2015년-

시진핑한테 2015년은 매우 중요했다. 시진핑은 2012년 급하게 주석직에 올랐지만 자신의 정권을 절대 놓을 생각이 없다. 시진핑은 2012년 이후 외견상으로는 "중국몽"이라 칭하는 제국주의 정책을 펼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홍콩"에서 '조슈아 웡'의 등장으로 2012년, 2014년 두번 다 내상을 입었다. 어떻게해야 시진핑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을 12월 들어서 어찌저찌 강제로 진압한 시진핑은, 2015년이 시작되자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자신의 말을 듣는 파벌을 결성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나중에 '시파'라 불린다.

시진핑 파벌 결성 작업의 시작으로, 2012년 집권 당시 자신을 밀어주었던 장쩌민의 상해방 숙청작업을 본격화했다. 시진핑은 2012년 12월 장쩌민(강택민)의 분신 저우융캉 공안부장(정법위 서기) 해임을 시작으로 하여, 저우융캉의 각종 실권을 박탈한 이후 기어이 2014년 12월, 저우융캉을 부패혐의로 감옥에 처넣었다. 장쩌민은 당연히 격렬하게 항의했는데 이를 핑계로 시진핑은 2015년 상해방 전체를 갈아버리기 시작하였다. 2015년 1월 말이 되자 중국 인민해방군 내부에 있는 상하이방 인사들을 모조리 부패혐의로 끌고가기 시작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16&aid=0000625884 

상하이방 인사들이 모조리 갈려나가면서 시진핑과의 투쟁에서 참패한 2015월 2월, 장쩌민은 저우융캉을 발탁한 것은 '불찰'이라고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출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7394827 ("장쩌민, '저우융캉 발탁은 불찰' 인정"<명보>) 그러나 여기서 끝날 시진핑이 아니다. 3월 다이하이보 상하이 부비서장(한국의 부시장급)을 부패혐의로 낙마시켰다(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318010011432).

시진핑은 마침 이 시점에 AIIB(아시아인프라개발투자은행)을 설립하였다. 미국, 일본을 제외한 세계 100여개 나라가 참가하고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출자를 이끌어내 대성공을 거두었다. 시진핑이 AIIB의 주도권을 쥘 것은 다른 나라가 뻔히 알았지만 그래도 "낙후된 나라와 지방에 인프라를 깔아주자"라고 말했던 시진핑의 명분이 많은 나라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이다. 시진핑은 이를 통해 "중국몽"에 대해 세계가 공감하고 있다며 제국주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하였다. 정작 AIIB를 통한 인프라 투자 사업은 AIIB에 세계 각국이 출자한 액수에 비하면 매우 적고, 그나마도 2017년 말부터 시작하였다. 2년동안 시진핑은 AIIB를 만들고도 "놀려 먹었다". 

독재를 하려면 당연히 정치자금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그래서 시진핑은 자기라인 회사를 키워주고 기존의 중국 기업들을 싹 숙청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시진핑은 마윈이 경영하는 알리바바 그룹이 중국 증시 대신 2014년 9월 19일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한 것을 트집잡아 알리바바에 대한 정치보복을 시작하였다.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861) 마윈의 알리바바는 상하이방(상해방)과의 관계로 성장했는데, 상해방을 조지고 있는 시진핑 입장에서는 알리바바도 보복 목표였다. 왜냐하면 상해방의 정치자금을 대는 곳이 바로 알리바바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마윈은 2016년 연말 은퇴선언을 해야 했고,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 11월 시진핑에 의해 알리바바의 경영권을 박탈당하고 숙청당했다. 알리바바는 2019년 11월 말이 되어서야 홍콩증시에 상장할 수 있었다. 참고로 아직도 알리바바는 중국증시(상하이, 선전)에는 상장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숙청당한다고 해서 바로 목이 날아가는 일은 잘 없다. 중국에서 '숙청'당하면 죽을때까지 가택연금에 처해지고 바깥에 행사차 나오더라도 1년 365일 24시간 86400초 내내 중국 공산당의 감시원이 붙는다. 마윈은 가택연금에 처해진 상태이다)

시진핑 독재정권이 본격화한 2015년 들어서 알리바바와 완다그룹은 숙청당하고(완다그룹은 이후 설명한다) 화웨이와 샤오미, 텐센트가 급격히 성장했다. 이 배경으로는 화웨이는 중국 군부와 친하고 샤오미는 원래 태자당 라인이었으나 보시라이 사건이 터지기 직전에 시진핑 라인을 탔기 때문이다. 특히, 텐센트는 알리바바를 숙청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진핑이 급격히 키워주었다. 2015년부터 텐센트는 자사의 어플리케이션 위챗을 기반으로 하여, 시진핑이 급격히 키워주게 되었다. 이를 통해 2017년 말 위챗페이(텐센트)가 알리페이(알리바바)를 제치고 세계 간편결제 시장 1위에 오른다. 이른바 XX페이라 불리는 간편결제 시장은 중국이 전 세계 거래총액의 92%를 차지한다. 2위인 미국의 간편결제 거래액은 중국 간편결제 거래액의 1/15밖에 안 된다.(미국 거래총액 비중 6%. 한국 페이들은 다 합쳐도 0.1%에도 못미친다.) 중국 1위가 곧 세계 1위인 분야이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을 진압하고 나서 시진핑은 홍콩 민심을 달랠 목적으로 중국기업이 상하이증권거래소 A주식과 홍콩증권거래소에 동시상장시켜서 교차거래를 허용하는 "후강퉁(沪港通, 호항통)"이라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 정책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짚자면, 상하이증권거래소는 주식이 2가지 종류이다. A주식과 B주식이 있는데, 외국인들은 의결권이 제한된 상하이 B주식(한국으로 치면 우선주와 비슷하나 상하이 B주식은 제한된 의결권이 있다)만 투자가 되고 A주식은 투자가 금지되어 있다. 2002년 상하이A주식에 대해 외국인 투자를 부분적으로 완화했다가 2007년 중국 상하이지수가 6500포인트까지 올라갔다가 2000포인트 아래로 꼬라박는 버블이 터진 덕분에 2008년 금융위기를 핑계로 다시 외국인들의 상하이A주식 투자를 금지했기 때문이다.(중국증시가 폭락하자 중국 선물옵션거래소가 유탄을 맞아 2009년 폐지되었다. 안습)

상하이증권거래소 주식들을 홍콩에 상장시키는 후강퉁이 시행되자, 중국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전 세계의 투자 물결로 인해 2014년 11월부터 홍콩증시는 전례없는 폭등장세가 연출되었다. 홍콩에 교차상장한 중국기업들로 인해 홍콩증시가 폭등하자 후강퉁에 따라 홍콩-상하이 차익거래가 활발하게 발생한 상하이증시도 2014년 11월 3000포인트에서 5200포인트까지 폭등했다. 중국증시가 폭등하자 시진핑은 2015년 5월 "자 이걸 봐라. 중국은 이제 영국, 미국을 뛰어넘을 금융중심국이 될 것이다!"라며 대대적인 선전에 돌입하였다. 이 시점에 리커창 총리(공청단)는 자신이 만든 "리커창지수"라는 것을 통해 정작 중국 내의 실물경기가 좋지 않다며 시진핑한테 '감히 진언'을 했고 이 진언을 들은 시진핑은 분노하여 상해방을 조지던 숙청의 칼날을 공청단과 시진핑의 출신 파벌 태자당으로 돌리게 된다. (태자당 숙청은 2015년 말, 공청단 숙청은 2016년부터 본격화)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후강퉁으로 인한 홍콩-상하이 증시 폭등은 버블이었고, 2015년 6월 말 갑자기 중국증시와 홍콩증시(특히 홍콩H지수)는 아래로 꼬라박히기 시작한다. 하필 왜 6월 말이었는가는 불명확하지만 이 시점에 폭락해버린 이유는 있었다. 후강퉁으로 인해 중국에 외화가 들어오면서 중국 외환보유액은 4조달러를 넘었는데, 정작 그 시기에 중국기업들은 해외자산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외화자본은 중국에 들어오는데 중국자본은 중국을 이탈해서 계속해서 위안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후강퉁으로 폭발해버린 중국주식을 살 중국 국내의 매수세력을 실종시켰고, 그 정점이 2015년 6월이었던 것이다. 2015년 6월이 되자 중국 기업들의 지속적인 외국자산매입 움직임을 이상하게 본 미국, 유럽의 자본들이 대거 빠져나갔고, 중국기업들의 외화자산 취득행렬과 더불어서 중국증시는 폭락하고 만다. 

주가가 갑자기 폭락하기 시작하자 시진핑은 다급했다. 2015년 5월에 중국 증시 폭등을 두고 "금융중심국"이 될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단 한 달만에 상황이 뒤집어진 것이다. 주가가 폭락하면서 중국에서 자본유출이 심각해졌다. 마침 2015년 7월, 중국 톈진 항구에서 인공위성으로도 그 폭발이 드러날 정도로 거대한 폭발 사고가 터지면서 중국경제의 위기가 가속화했다.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진핑은 외환보유액을 환율 방어에 무제한으로 투입하라고 명령했다. 중국 외환보유액은 2015년 5월 4조 2천억 달러로 기록을 세운 이후, 단 5개월만인 2015년 10월 3조 1,000억까지 줄어들어 무려 1조 1천억 달러가 삽시간에 녹아버렸다. 외환보유액을 동원하여 위안화 가치 하락을 막으면서, 중국 자본통제 조치를 강화하였다. 먼저 중국기업들의 해외자산 취득을 금지하고 중국기업들이 위안화를 외화로 환전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본보기로 숙청할 기업을 고르니 그게 바로 "왕젠린"이 이끄는 완다그룹이다. 완다그룹을 숙청하면서 시진핑은 태자당도 숙청한다.


완다그룹은 중국 다롄시를 기반으로 성장한 부동산 재벌로, 부동산 사업에서 번 돈을 통해 영화사업에 뛰어들었다. 왕젠린은 중국인들이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면 영화를 볼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했고, 2000년대 초반 '낙향'하기 전 다롄시장이던 "보시라이"(사망 플래그)와의 끈끈한 관계를 통해 영화사업에 진출하였다. 태자당 주류인 보시라이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은 왕젠린은 '당연히' 영화산업으로 돈방석에 올라앉았다. 완다그룹은 영화관 회사 완다시네마를 통해 중국 1위 영화관 사업체가 되었고, 2012년 미국 최대의 영화관 AMC 시어터스(무려 스크린이 8,700개!! 2019년 12월 현재 한국 영화관 총 스크린 개수가 3,100개임)를 "현찰박치기"를 통해 통째로 인수하였다. 그 이후 완다는 영국 1위 영화관 오데온시네마(Odeon), 호주 1위 영화관 호이츠(Hoyts) 등 세계 10여개 국가의 1위 영화관만 싹쓸이하여 세계 영화관에서 넘사벽 1위에 올랐다. 또한 미국 2위 영화관인 리걸 엔터테인먼트 그룹(Regal Entertainment Group, 영화관 스크린 7,300개)도 완다시네마에서 지분을 25% 출자하여 관계사로 집어넣었다. AMC와 리걸만 해도 미국 총 영화관 스크린 개수(4만 2천개)의 1/3을 넘게 차지한다. 

완다시네마가 자회사를 통해(REGAL같이 전략적 제휴관계의 관계사 제외) 운영중인 세계 영화관 스크린 개수는 2만 4,000개에 달하며, 전 세계 영화 스크린 총 합계의 10%에 달하는 미친 숫자이다. 대표적으로 비교하자면, 한국 최대 영화관 CGV가 베트남, 터키, 중국, 말레이시아 등 세계 전체에서 경영중인 스크린 3,400개이다. 완다시네마는 CGV의 8배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개수의 스크린을 갖춘 세계 최대의 영화관이다. 

완다시네마가 전 세계 영화관 스크린의 13%를 독식하자(13%가 낮은거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계 영화관 회사들은 0.1%만 차지해도 엄청 차지한 거다),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20세기 폭스 등 세계 유수의 영화 회사들은 왕젠린의 눈밖에 나면 영화관에 영화를 걸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왕젠린은 포브스 선정 세계의 권력자들(The World's Most Powerful People) 순위에서 최고 25위까지 올라갔다가 2019년 기준 52위에 랭크되어 있다. 세계 문화 산업을 사실상 독식하고 있는 월트 디즈니의 밥 아이거(Bob Iger)가 세계 권력 49위이니 "엄청 떨어지고도" 52위인 왕젠린의 권력이 어느정도인지 감이 올 것이다. 참고로 한국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 권력자 순위 54위이다. 왕젠린보다도 낮다! 

시진핑은 2015년 8월 27일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을 출국금지하였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9501817 완다그룹에서는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8143987 출국금지를 부인했지만 아무도 믿을리가 없다. 시진핑은 왕젠린을 끌고가서 더 이상의 해외투자를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단 1위안이라도 해외에 투자할 경우 보시라이와 엮어서 저승으로 보내버리겠다는 협박은 덤이다. 왕젠린 회장은 자기가 찍혔다는 것을 직감하고 서둘러 일부 해외자산을 처분하였다. 처분한 돈으로 중국에 축구단을 세우고 중국바둑갑조리그 팀을 창단하였다. 축구와 바둑은 시진핑이 매우 좋아하는 취미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한 번 적으로 찍은 사람에 대해서는 무조건 숙청을 진행하니 왕젠린은 파리목숨이었다. 왕젠린의 아들 왕쓰충은 인터넷 방송 회사 판다TV를 경영했는데 2019년 11월 빚을 갚지 않았다는 "핑계"로 중국 법원(중국은 법원도 공산당 거수기)한테 잡혀가는 처지에 몰렸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1195884

하여간 시진핑은 중국 증시를 강제로 떠받들고 외화유출을 통제하며, 본보기로 왕젠린(완다그룹)을 조지면서 5200포인트에서 떨어졌던 상하이증시는 3000선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홍콩증시는 후유증 수습이 매우 힘들었다. 홍콩 증시는 2018년이 되어서야 회복하기 시작했다. 시진핑은 "금융정책"을 잘못짰다는 이유로 리커창 총리의 실권을 박탈하고 시진핑이 직접 통제하게끔 권한을 회수하였다. 시진핑이 잘못해서 주식을 말아먹고 책임은 리커창한테 떠넘긴 것이다. 이후 2016년 연초 중국증시가 한번 더 폭락하는데, 이때에는 아예 중국 금융관리국장을 경질하고 뇌물혐의로 감옥에 처넣기까지 한다. 그리고 2012년 취임했던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을 "그동안의 정치경제적 여러가지 실책"을 이유로 재선출마를 금지했다. 형식적으로야 렁춘잉 본인이 "재선출마를 하지 않겠습니다" 말한 것인데 누가 봐도 시진핑의 경질이었다. 렁춘잉이 재선출마를 하지 않은 것이 본의가 아니었다는 점은 렁춘잉의 후임으로 들어온 캐리 람 행정장관 지지율이 떨어지자(캐리 람은 송환법 사태 이전인 2018년 초부터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렁춘잉 '본인'이 재선 출마설을 뿌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명백하다. 

2015년 9월, 이른바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박근혜가 참석했다. 박근혜한테 미국에서 대놓고 중국에 가지 말라고 경고를 수차례 했다. 그러나 AIIB를 놓고 한국이 우물쭈물하다가 지분을 잃었던 탓인지 박근혜는 전승절 70주년에 참석하고 만다. 미국은 거세게 반발했고 시진핑은 "유일하게 서방세계에서 전승절 행사에 참가한 사람"이라며 박근혜를 환대했다. (그리고 미국은 2016년 한국에 사드배치를 하고, 시진핑은 한국한테 이른바 한한령을 시작한다. 물론 2015년 시점이니까 아직 사드 문제가 시작되기 전이다.) 이 사건은 2015년 7월 증시 버블 붕괴로 인해 흔들리던 시진핑의 권력을 다시 공고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5년 11월, 중국 입장에서 격동의 시간을 보냈던 2015년을 결산하는 의미로 홍콩에서는 구의회 선거가 치러졌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에 대한 "심판" 성격이었다. 시진핑은 매우 긴장했다.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와 달리 2015년 구의회 선거는 우산혁명의 주역들이 아직 정치인으로 변신하지 못한 시점이었다. 기존 주류 민주파 내부에서도 우산혁명 시위 주도 세력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문제가 남아 합의에 실패했다. 민주파가 단일화 및 연대 합의에 실패하면서 안 그래도 조직력이 우위인 친중파 진영이 앞서나갔고 민주파는 지리멸렬해서 400여개 지역구 중 60여 곳에는 아예 후보조차 내지 못해서 친중파 단수후보 당선도 벌어졌다. 그렇게 홍콩 선거에서는 친중파 308 vs 민주파 117이라는, 시진핑의 압도적인 승리로 선거가 끝이 났다. 홍콩 시민들이 우산혁명 지도부가 아니라 시진핑을 택한 것이다. 시진핑은 아주 좋아 죽으면서 중국 관영언론들을 통해 "소위 '우산혁명'이라 부르는 <난동>은 이제 끝이 났다. 홍콩은 시진핑 주석의 영도 아래 번영할 것"이라는 온갖 선전을 쏟아냈다. 홍콩 선거에서 이긴 시진핑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11월에 구의회 선거를 했는데 2015년 12월까지 중국 관영언론들은 홍콩 선거 기사를 1달동안 무려 1만 개나 쏟아냈다. 구의회에서 뽑힌 친중파 당선자들 개개인을 극진히 모셔서 1사람 당 4번씩 인터뷰까지 따셨다. 딱 4년 후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 결과를 접한 중국 관영언론들은 개표 결과가 나온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2019년 12월 23일 지금까지도 신화통신, CCTV, 인민일보, 환구시보 등 중국 관영언론에서 홍콩 선거 결과를 보도한 기사는 다 합쳐서 10건이 되지 않는다.

2015년의 각종 사건사고는 중국 시진핑이 1인 독재를 할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명분이라기보다는 좋은건 내가먹고 나쁜건 정적한테 떠넘기는 김일성식 정치의 결과물이다. 2015년 6~7월 중국 증시 버블 붕괴에도 불구하고 11월 홍콩 선거에서 시진핑이 이겼으니 반대파를 다 찍어누르는 데에 성공했다. 

중국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을 옆동네 대만에서 모를리가 없다. 2016년 1월 시행되는 대만 대선을 앞두고, 차이잉원(채영문) 민주진보당 후보는 2015년 내내 대만 대선(총통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율로 앞서나갔다. 친중 성향인 중국 국민당은 지지율이 바닥을 긁어대다 보니 대선 후보가 교체당하는(훙슈주 -> 주리룬) 선거 분쟁을 벌이고 있었고 친민당의 쑹추위 후보는 10%대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시진핑은 차이잉원이 당선되면 안 된다고 대만을 압박했으나 중국의 꼴을 본 대만 국민들은 차이잉원을 지지했다. 

2015년 12월, 한국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 인터넷 방송분에 출연했던 TWICE의 쯔위가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었다가 중국에서 난리를 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진핑은 처음에는 이 사건에 대해 정확하게 보고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진핑 입장에서 대만 국기 등장은 있어선 안 될 일이었지만 MBC에 방영된 본편에서는 해당 국기 장면들이 편집된 상태로 방송됐기 때문이다. MBC 본방송에서 국기장면이 편집됐다는 사실을 전달받고 나서 시진핑은 이슈를 죽이는 데에 나섰지만 시진핑이 벌려놓은 "중국 제국주의"(이른바 중국몽, 영어로 하면 Make China Great Again) 분위기때문에 시진핑은 이도저도 못하고 갇히고 말았다. 실제로 쯔위 사건 때에 중국 관영언론은 MBC 본방송에서 국기장면이 잘렸다는 사실(2015년 12월 26일 이후)을 알고난 이후 관련 보도를 전부 지우기 시작했고, 중국 외교부는 이번 쯔위 사건에 대해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단 한 건의 공개적 논평을 내지 않았다". 이슈 자체는 한국, 중국, 대만을 넘어서 전 세계를 달궜는데 정작 중국 정부에서는 쯔위 사건 자체를 "없었던 일"로 치부한 것이다! 시진핑의 결단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중국몽 드립을 하도 쳐대다 보니 중국 내부의 분란은 계속됐고, 2015년의 시진핑은 연말 분위기를 조져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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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후로는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하는데 이 부분은 작성하기가 힘듭니다. 시진핑의 철권통치는 2018년에 완성됐는데 아직 관련 정보가 부족하네요. 언제 쓸 지는 모르겠습니다. 

덧글

  • 2019/12/25 11:1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12/25 16:0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밥과술 2019/12/25 11:13 #

    평소에도 재미있게 읽고 있던 애독자입니다. 이번에 연재하시는 시진핑 씨리즈 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구요. 다음편이 기대 됩니다. 감사합니다~
  • Kael 2019/12/25 16:03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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